Blog Season 1 종료/ㄴ 여행

전주 한옥마을 유감

Joey 2015. 3. 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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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다이어리에 도장 찍으로 전주를 찾았다.

고등학교때 까지 경북에서, 대학 진학 후에는 군대시절 동두천에서 2년 정도 지냈던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서울에서 살아와서인지 전주라는 도시가 그리 익숙하지가 않다. 전주 라고 하면 딱 두가지가 떠오른다. '비빔밥'과 '한옥마을'

1박 2일의 여행일정. 내려가는 길에 대전에서 결혼식에 잠깐 들려야 하기에 여행일정이 넉넉하지는 않다. 그래서 한옥마을 주변에 숙소를 정하고, 그 주변의 유명한 곳들과 맛집들을 적당히 둘러본 뒤, 스타벅스 전북도청점에서 커피한잔과 스탬프 한방을 얻어오는, 복잡하지 않은 계획으로 전주 여행을 떠났다.


문제의 전주 한옥마을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길을 나선게 문제였던 것 같다. '한옥마을' 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외형적인 느낌이 주는 이미지라면 이 사진 처럼 전통 기와를 올린 집들이 늘어선 마을이 있고, 마을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고즈넉한 느낌의 골목이 있을 것이다. 양반이 헛기침 해가며 대문을 두들길 만한 집은 넓직한 마당과 본채, 사랑채의 적당한 배치, 툇마루에 잠깐 걸터 앉을만한 여유. 고무신 두어켤레가 놓여진 섬돌. 한지가 발라진 문틀과 창살.

행여나 그 곳이 관광지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옥마을이 주는 이미지는, 최소한 나에게는 위와 같다.

나는 전주 한옥마을이 이런 곳인지 몰랐다. 혹시나, 내가 외국인 친구 또는 손님을 모시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사전정보 없이 전주 한옥마을을 선택했었다면, 크게 당혹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목대, 오목대에서 바라보는 위 사진과 같은 한옥 기와지붕의 모습 까지만 보여준 뒤, 경기전으로 곧장 향해, 태조 어진과 전주서고 등만 둘러본 뒤에, 한옥 느낌의 집들로 꾸며둔 상업지구가 있다고 소개를 해야지 될 것 같다. 차마 내 입으로 외국인에게 이 곳이 '한옥'마을 입니다 라고는 소개 못하겠다)


전통과 문화가 없는 전주 한옥마을

여행을 다녀온 뒤 어머니와 잠깐 통화를 하며,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다고 하니, 좋은데 다녀왔네...... 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조금의 사전 정보가 있었다면, 또는, '한옥 = 전통과 문화'라는 선입견이 없이 다녀왔다면, 이렇게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일전, 안동 하회마을을 여행하고, 농암종택이라는 한옥에서 숙박을 하며, 한껏 한옥의 정취를 느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내 기준에는, 전주 한옥마을에는 한옥이 없다. 그냥, 양옥의 치장을 나무로 하고, 그 위에 시커먼 기와를 올려뒀을 뿐이다. 또는, 몇몇 한옥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집은, 관광지로서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하기 위해, 한옥의 느낌을 '한옥으로 치장한 양옥'의 새로운 기준에 맞추기 위해 모두 가려버렸다.

저 집이 한옥으로 보이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건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전통의 그 무언가를 공부한 적도 없다. 그나마, 이 동네, 전주 한옥마을 이라고 불리는 곳을 돌아다니며 본, 가장 한옥스러운 집이었다. 한옥이라고 부르는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 이 동네가 한옥마을 이라고 불리는 것에 괜히 거부감이 든다.

저런 우스꽝 스러운 모습의 집도 있다. 어쩌다가 흔히 보는 2층 양옥 집에 저런 어울리지 않는 기와 지붕을 올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저 집 왼쪽 열려있는 창으로는 잠옷 바람의 할아버지 한명이 일요일 아침부터 북적이는 동네를 조용히 바라보고 계시더라. 혼자 소설을 써 보자면, 이 동네의 역사를 전혀 모르지만...... 

한옥이 몰려있는 오래된 동네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양옥 집을 지은 한 집이 있다. 그런데 동네에 남아있는 한옥집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옥마을이라는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지방 정부에서는 이 마을을 잘 꾸며서 관광지화 시키고자 한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소위 장사를 시작하는 집들이 생겨나고 동네는 상업화 된다. 길도 예쁘게 다시 깔리고,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한옥'의 껍데기를 쓴 새로운 집들의 공사가 시작된다. 일찌감치 양옥으로 집을 올린 이곳에도, 집을 팔아라, 한옥으로 개조를 해라, 임대를 해라는 등 여러 간섭들이 들어오지만 집주인은 그러기가 싫다. 그냥 산다. 누군가 와서, 그러면 한옥마을이니 지붕이라도 기와를 올리라고 한다. 마지못해 어울리지도 않는 기와를 올린다. 언제부터 이 동네가 한옥마을이었나...... 조용한 일요일 아침을 잃어버린 할어버지는 물끄러미 관광객을 바라본다.

와이프랑 저 집을 바라보며 생각했던 내용이다. '한옥마을'에 간다는 기대와 현실의 차이. Expectation Gap 때문에, 한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여행이었다.

한옥만 없는게 아니다.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전통과 문화라는 느낌이 없다.

그냥 이런 곳이다. 한국, 한옥, 전통, 문화라는 '한옥마을'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선입견과는 전혀 무관한 음식들, 초코파이, 오징어 튀김, 닭꼬치, 문어튀김, 츄러스, 지팡이과자 등. 대한민국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그 어떤 동네에 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특히 서울에서는), 그저 그런 길거리 음식을 파는 집들이 맛집이라는 이름 하에 늘어서 있고 (몇개 먹어봤는데, 저렇게 줄을 서서 먹을 만한 가치는 없다. 평범한 길거리 음식들이다), 그 유명새에 흔하디 흔한 길거리 음식 한입 먹어보고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그런 곳이다.


난, 이 동네를 '한옥마을'이라고 부르는게 싫다.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을 어설프게 흉내 낸 상가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적당히 맛을 낸 길거리 음식을 한입 맛 보고자 길게 줄을 선 모습을 가장 많이 구경할 수 있는, 약간은 독특한 상업지구일 뿐이다. 여행을 간다면, 한옥의 고즈넉함, 전통과 문화. 이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말고 방문하시라. 만약 외국인 친구 또는 손님에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고 싶다면, 이곳을 찾지 마시라.

그리고, 지독한 주차난과 식당에서 줄 서는 것에 대한 인내심을 미리 장착하고 찾아가시라. 혹시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서 한옥에서의 하룻밤이라며 광고하는 숙박집이 있으면 정확히 잘 알아보고 가시라. 내가 머문 곳은 오래된 가정집을 한옥 느낌이 나게 수리한 곳이었고, 주차장이 없어 인도 한가운데 차를 둬야 하는 그냥 민박집이었다 (깨끗하긴 했지만, 1박에 9만원이나 줄 만한 곳도 아니었고,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라 밤새 술을 마시는 옆방 젊은이들의 시끄러움에 괴로워해야 했었다). 참고로, 한옥에서 하룻밤을 원한다면, 농암종택을 추천해 보고 싶다. 


경기전, 오목대, 벽화마을. 이 세 곳은 참 좋았다. 한옥마을에서 모두 연결된 곳이어서, 여행의 목적지를 이 세곳으로 두고, 여행 중, 요기거리를 위해 먹거리 골목을 찾는다는 느낌으로 한옥마을을 찾는 것이, 내 스타일에는 더 잘 맞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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