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Season 3/적바림

2023.01.20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Joey 2023. 1. 20. 15:24
반응형

1. 속도 조절

말의 속도, 생각의 속도, 행동의 속도. 보다 느리게, 천천히. 하지만 신중하고, 깊이있고, 올바르게.

천천히 한순간 순간의 생각을 ‘음미’하자.

2. 알콜성 치매

이야기거리가 떠올라 말을 시작하고 두어문장 뱉어낸 뒤,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이어가지 못해, 한참 뜸을 들이며 말을 돌리다, 결국 원래 하려던 말이 끝까지 떠오르지 않아 엉뚱한, 맥락없는 이야기로 마무리짓는 경우가 잦아진다. 유쾌한 술자리일 수록 어느 순간 술을 마시는 나 자신에 대한 인지가 사라지며, 어지럽고 소란스러우며 붕 떠있는 즐거운 기분만 기억에 남은 채 시간이 흘러간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술이 취했는지, 아직 제정신인지 여러번 가늠하며 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순간이 되면 그 행위 자체가 내가 취하지 않았다는 자기 합리화의 수단이 되고, 단절된 기억이 시작되며 한잔, 두잔 술이 나를 나한테서 밀어낸다.

술자리를 떠나서는 쓸데없이 친구한테 전화를 건다거나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그런 욕구를 간신히 누르기도 한다. 귀소 본능. 어떻게든 집에는 온다. 비틀거리며 지하철 기둥을 잡고, 마을 버스를 보고 달리고 버스 손잡이에 간신히 메달리고, 지하철이든 버스든 자리가 나면 주위 살피지 않고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어떻게든 집에는 온다.  편의점에 들러 숙취해소 음료, 이온음료 하나씩 손에 쥐고 간신히 집에 들어와 마시면서 가족들과 인사하고 씻고 내일을 걱정하며 잠든다.

서너번 깨고 숙취 증상으로 매번 등장하는 두통에 괴로워하며 아침을 맞이하는데, 뒤늦게 수많은 기억들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또 후회한다.

소란스럽고 웃음 가득했던 술자리의 분위기는 남아 있지만, 그 와중에 내가 떠든 말들, 다른사람이 한 이야기들은 상당 부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늘 “필름 끊겼음”을 함께 한 이들에게 고백하고 무언가 실수한게 없는지 확인하는데, 항상 괜찮았다고 한다. 술에 관대한 우리 문화 덕분인지, 내가 정말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는 알콜성 치매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든 집에 온 그 경로도 의문이다. 심지어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지역에서 전철을 타고 출발해서 오더라도, 무사히 환승 두어번 해 가며 집에는 오는데, 다음날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3. 내가 아닌 내가 하는 말들

회의할 때나 보고하는 자리에서, 복잡한 내용을 내 목과 입과 혀가 열심히 자기 할 바를 다 하며 듣고 있는 이에게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그 순간을 ‘의식’하며 놀랄 때가 많다. 한참을 이야기 하던 중 내 자신을 의식하면, 눈길은 이야기 상대방이나 책상에 놓여진 자료를 향하고 있지만, 시야는 좁아지고 초점은 흐려져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상태이며, 내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말은 내 의식과는 무관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인 경우가 종종 있다.

횡설수설은 아니다. 수차례 고민하고 읽고 쓰고 연습했던 내용들이 유려하게 입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듣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잘 이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나만 모른다. 내가 무슨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인지.

물론, 사전에 준비했던 이야기고 늘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답변들이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굳이 의식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아닌 내가 말을 하고 있다.

4. 대화

어느 순간 상대방은 앞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존재가 되고, 난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하던 ‘이야기’ 중 내가 관련된 것, 내가 흥미를 가진 것이 등장하는 순간, 상대방 이야기에 머물러 있던 내 의식은 ‘그것’들에게 ‘납치’되어버린다.

대화는 끊어지고 상대방은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날 납치했던 그것이 가져가 버린다.

서로의 ‘이야기’가 오고 가지 못하고 ‘소리’만 오가는 시간이 된다.

5. 다시 속도조절하고 집중

나 스스로에게든, 누군가에게든 천천히 그 순간에 머물러 집중하자. 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자.

반응형

'Blog Season 3 > 적바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트볼 파스타 또는 스파게티  (0) 2023.01.29
적바림  (1) 2023.01.15